노래는 잔디밭 허공에 나무 한그루 심어놓고
주말에 오는 빈집에
새롭게 컨테이너에 페인트 칠 단장을 마치고
유월의 만개한 가시돋친 장미가 쉽게 말을 건넨다.
눈이 타들어가는 붉은 유월이 아쉽다고
장미만이 아니다.
청보리가 누렇게 익은 나잇살 먹은 보릿대도 요리조리 빳빳한 가시가 많다.
풋풋한 청보리 사랑과 누런 보릿대가
그들의 자연스런 삶이었을, 그래서 허망하다는 걸
잘 익은 보릿대는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다.
너른 잔디밭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추억들이 지나가는 노랫말에
오랜만에 취하고 있다.
붉은 해가 매달려
구름이 점점 아래로 내려놓을 즈음
나무의 꽃들도 내려놓고
산기슭을 날던 구름이 날개을 접고 비행한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도란도란 둘러 앉아
그간의 삶의 무게들을 벗기고
나는 기타를 들고
노래는 잔디밭 허공에 큰 나무 한 그루 심어 놓고
내 오래된 추억들은 취하고
나는 더듬더듬 기타를 치고
그리고 노래는 작은 나무 한 그루 더 심어 놓고
흘러간 옛 노래를 따라 허밍처럼
그 많은 삶들이 허공에서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규칙없는 뜬금없는 하루를 얼버무리고
가느다란 빈 하늘 가장자리의
유월의 붉은 장미와 누렇고 긴 보릿대의 작고 하찮은 얘기들 듣고
그리고
기타 여섯줄에 한참이나
별을 달래며 출출하게 노래를 불렀다.
2022. 6.11 소반 안기필 (의정부 모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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