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김포문학 발표(김포 가금리 인연, 당신의 흉내)
김포 가금리 인연
안 기 필
문득
하얀 감자꽃 따는 날에야
앞 마당 감나무
몽우리 돋아나는 잎을
참새 훔치는 소리로 흘기면
새빨간 거짓부렁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남은 새파란 잎들을 주렁주렁 위로하고 있다.
전설 같은 고향이름인
김제金堤 심포浦 리에서
꿈같이 아득한 먼 길 돌아
김포金浦 가금金 리까지
전생의 아찔하게 이어온 날들을 붙잡아
귀한 금金 을 꼭꼭 숨겨 놓았나 보다.
꽃 망태기 둘러 메고
정처 없는 길 돌아
한 땀 한 땀 육십갑자六十甲子 오르는 날에
마을회관 지하1층 빛바랜 민방공대피소 빨간 간판이
낯설게 부르고 있었다.
바로 앞
가금들판 철책선 강 너머에는
북녘 땅 초소의 어린 병사가
아직은 덜 익은
가금 쌀을 뜨겁게 익히고 있다.
어느 인연으로 자맥질해 들어와
김金포 가금金 리에서
어느새
마당가 붉게 물들이는
가을 고추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흉내
가난을 업고 살았던 60년 잠깐의 여름날에 대나무 소쿠리에 쉰내 나는 꽁보리밥을 씻어 찬물에 헹구어 몰래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난의 세월 지났어도 쌀 한 톨 남기고 않고 싹싹 비우며 밥을 남기면 죄로 간다고 습관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당신 말대로 고운 하늘빛으로 비추어 이 땅의 순박한 농부의 수고로운 금쌀을 절대로 남기면 안되는 줄 알았습니다.
허기진 세월을 위안삼아 마지막 쌀 한톨을 남기지 않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신의 쪼잔한 마음 헛투로 듣지 않고 지금 아이들에게 그대로 흉내를 냅니다.
넉넉한 마음 가질 새 없이 밥상머리에서 촉촉히 젖은 잔소리를 똑같이 합니다.
황량한 가을들판에 버려져 짓밟힌 벼 이삭들의 구차하고 초라한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배부른 이 가을에
당신의 게걸스러운 흉내를 내며 익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