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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숲의 삶을 거스리지 않는 겸손한 흙집

ksanss@hanmail.net 2006. 6. 23. 22:15

 

 

 

숲의 삶을 거스르지 않는 겸손한 흙집

‘집’이라는 말. 그 말은 얼마나 따뜻한가. 내집이든 아니든 집은 떠나있는 사람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니, 어둔 곳에서 힘들고 아파도 불 켜진 집을 보면 눈물나는 이유가 그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삶의 위안이 되어주는 집에 대한 애착, 그런 애착은 다시 삶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될 터. 원경우씨 부부는 그런 애착으로 내 집을 손수 지음으로써 일의 즐거움과 집짓기의 행복을 느꼈다.

비록 시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런 과정이 부부에게는 이미 전원생활의 시작이었으며, 내 집 짓는 일의 행복함을 고스란히 누림으로써 집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해졌다.

그리고 그런 각별함은 이제부터 살아야 할 시간들을 든든히 받쳐주는 힘이 될 것 같다고 한다.

▲ 마당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집 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다. 걸어가며 자연을 느껴보라는 주인 부부의 배려다.

모나지 않게 둥글게, 속 깊은 주인 닮은 집

원주의 금창리 집으로 가는 길은 숲속 길이었다. 비포장 길을 울퉁불퉁 거리며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집은 보이지 않고 진입로만 보인다. 집은 숲길 안쪽으로 보일 듯 말 듯하면서도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한 걸음 비켜서 있었다.

진입로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니 자연 그대로의 숲으로 둘러쳐진 정원과 그 안으로 숲과 다르지 않은 1층짜리 너와지붕의 흙집이 보였다. 마당한 가운데는 빈 연못이 있었고, 집 앞으로는 수령이 족히 몇십년은 넘었을 메타세콰이어와 마로니에, 벚꽃나무가 자연림의 한 가운데임을 알려주듯 당당하게 서 있다.

“거기 그 벚꽃나무에 꽃이 핀 모습을 거실에서 보면, 나무 자체가 보름달처럼 떠올라 마당은 물론, 이 숲 전체가 환해요”

이미 시골사람이 다 된 듯 검은 장화에 모자를 눌러 쓴 집주인이 다가오며, 그렇게 눈물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전에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숲속에 들어선 집과 사람에게 내려주는 자연의 선물이지 싶었다.

원경우씨는 이곳 원주가 고향이다. 축산과를 졸업했지만 전공과는 다른 사업을 하면서 젊은 날을 살아왔다. 하지만 마음 한 쪽에는 언젠가 자연과 함께 살리라는 꿈을 남몰래 키워왔다. 차츰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기만 했고, 10여년전부터 차츰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는데, 결국은 사업을 일찌감치 정리하고 조금 이르게 이곳에 집을 짓게 되었다.

▲ 우리의 전통 마루짜기에 의한 우물마루. 깔린 마루의 모습이 우물정자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던 사업을 접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그것이 은퇴가 아니고 이제 이곳에서 본래 꿈꾸어왔던 새로운 일과 삶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왔기에 그의 집짓기는 처음 터잡기에서부터 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하루도 이 집에서 몸과 마음이 떠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도 그의 집짓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집 자체는 완성됐지만 정리하고 가꾸어야 할 것들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 숲과 잘 조화될 수 있도록 조경도 해야 하고, 남아 있는 터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또 다른 건물도 지어야하고,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가 집짓기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집이 주변의 자연환경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좋은 자연 속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그 주인 같은 자연을 해치면서 집을 지을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적삼목 너와 지붕에 흙집으로 지은 것도 그에 따라 선택된 재료들이었다.

▲ 강돌로 만든 굴뚝. 부부는 이 굴뚝에 꽤나 공을 들였다.

전원 삶의 오랜 꿈이 가득한 숲속의 집

원경우씨 부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토목공사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전. 부지를 매입한 후부터는 어떤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가 화두였다. 10년 이상을 생각해왔던 집짓기였기에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먼저 모델로 삼을 만한 집들을 찾고 또 찾았다. 몇 가지의 모델들을 두고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 우리식의 토속적인 흙집으로 결정했다. 이후에는 흙집을 전문으로 시공하는 업체를 찾아 건축을 맡기고, 그때부터는 전국 어디라도 모델이 될만한 흙집을 시공사와 함께 찾아다니며 순례를 하였는데, 직접 보면서 느낀 생각을 시공사에게 보다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시공사와 함께 각 흙집을 다니며 장단점과 집의 느낌, 자재들을 현장에서 협의하고 토론하는 그야말로 공동으로 집의 모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주로 지붕재가 너와 집인 흙집들을 찾아보았다.

▲ 우물마루에 앉은 원경우, 구명숙씨 부부

살림집의 기본 설계 작업에 들어간지 약 1달 여만에 시공사와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1층 본채는 43평 규모로 방과 거실, 주방, 저장소가 있는 다용도실, 화장실로 꾸며지고, 안방은 구들방으로, 거실 좌측면의 툇마루는 준공 후 온실 등의 공간으로 활용토록 설계되었다.

거실은 삼량식 노출 서까래 방식의 황토마감으로 처리키로 하고 각 방은 평천장으로 마감키로 했다. 특히 구들방은 일반 고래 구들방식이 아닌 옛 연탄난로 관으로 사용하던 토관을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구들배관을 하기로 하였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웅장한 조적조 기둥에 1자(30cm)의 목재 도리가 돌고, 현관과 툇마루, 거실은 원형 기둥이 세워졌다. 거실과 주방은 삼량구조의 노출 서까래 지붕이 만들어 졌고, 그 위로 전체적인 지붕 모양이 잡혀가고 있다.

시공이 완료된 지붕은 전체적으로 가지런한 느낌의 너와질감으로 표현되었다. 너와지붕의 하자를 줄이기 위하여 방수시트를 이중으로 덮은 후 평평한 너와로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피죽이 붙은 너와를 치장으로 썼다.

▲ 한옥의 처마에서 볼수 있는 풍경. 햇살과 나무를 배경으로 아름답다.

토속적인 느낌의 한국적 너와집은 아니지만 산 속에 어우러진 단아한 집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너와집은 햇빛에 직접 노출된 평지보다 약간의 산그늘이 지는 산 속에서 수명도 오래가고 어울리는 법이다.

방의 천장공사와 문틀공사 후 미장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구들방과 굴뚝이 앉혀지고 걱정 많았던 조적 기둥에 파벽돌 인조석이 치장을 하자 집의 모양이 틀을 잡아갔다. 원경우씨는 강원도라는 지리적 조건과 산 속의 집이라는 점 때문에 단열에 많은 신경을 썼다. 다소 어색할 수도 있는 유럽식 시스템창을 쓴 것도 최대한의 단열효과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시스템 창이 내부의 목창살을 배경으로 깔끔하게 정리되고나니 괜찮은 어울림이 되었다. 실내에는 벽난로를 설치했는데, 쓰지 않는 계절에는 한지문을 닫아보이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했다.

2002년 3월 착공에 들어간지 약 5개월이 지난 8월 말에 드디어 원경우씨 부부의 오랜 전원삶의 꿈이 담긴 숲속의 집이 완공되었다. 완성되기까지 시공사와 협의하여 몇 번의 설계 변경이 있었다. 마음속에 그렸던 집과 실제 시공되는 집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고 보완한 결과였다.

그래서 완성된 집은 두 개의 방과 창이 넓어 마당을 다 품어 안는 거실이 자리를 잡았고,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 재래부엌, 다락 등으로 실내가 구성되었으며, 외벽은 흙벽돌 2장 쌓기에 내벽황토미장으로 처리하였다.

지붕과 천장은 이중 단열에 적삼목 너와로 마감하였고 거실 및 주방은 삼량식 구조의 한옥 천장으로 마감되었다. 토속적인 것을 많이 생각했던 주인 부부는 안방의 반은 구들난방, 반은 일반 난방으로 하였고, 거실과 연결된 외부 툇마루를 전통방식의 우물마루로 시공하였다. 시공비는 건축비와 토목 조경을 합쳐 약 2억여원이 소요되었다.


새소리에 잠깨고 새와 함께 잠드는 집

흙으로 지은 집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는 단열성을 꼽는다. 열차단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습도 조절기능도 무척이나 뛰어나다. 실제로 그럴까?

부부는 한 입으로 분명히 그렇다는 의미의 건강주택임을 강조했다. 이제는 오히려 흙집의 전도사가 되어 남에게 적극 권장할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집은 주변 환경과의 어울림을 전제로 지은 집이기에 주변 조경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림 속에 지어지는 집이다 보니, 집 자체가 또 다른 한 그루의 나무이기를 바랬다는 집 주인의 속깊은 생각처럼 집은 새소리에 잠 깨고 새와 함께 잠드는 집이 될 수 있었다.

“집을 지을 때부터 집안으로 드나들던 새가 있었는데, 집이 완성된 후에도 자꾸만 유리창에 와서 부딪히더라구요. 유리가 있다고 말해줘도 못 알아듣더라구요”


원경우씨는 집을 지으면서 가능한 창문을 많이 달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더 자연에 다가서 있고 싶었던 때문이다. 그래서 거실 창은 대형통유리로 만들어, 거실에서 바로 숲을 만날 수 있도록 했는데, 새들이 그 소식을 못 들었는지 자꾸만 날아든다는 것. 그 때문에 할수 없이 커튼을 달아야 했다. 이후로는 예전처럼 부딪히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새들은 여전히 집 주변을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

딱따구리의 나무 조는 소리가 깊은 계곡을 더욱 깊게 하는 백운산과 치악산이 마주보는 사이에 자리한 집터. 시내와는 다소 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처음 이 터를 와보고는 망설임 없이 이 자리다 싶었다고 했다.

자신의 살림집 한 채를 짓고 남은 자리에 자연을 닮은 정원과 보다 많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공간을 계획 중이다. 아직 구체화 된것은 아니지만 명상센터 같은 것을 두어 필요한 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계획에 앞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어떤 경우에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 그만큼그는 이 숲과 자연을 사랑한다. 새소리에 잠 깨고 새와 함께 잠드는 집. 거기서 숲 속의 다른 나무들처럼 살아가는 부부. 말 한마디, 몸짓 하나까지도 자연의 바람과 햇살을 닮았다.

출처 : 나 살던 고향
글쓴이 : 최민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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