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도봉산 광륜사 번개모임('13.11.23)

ksanss@hanmail.net 2013. 11. 25. 22:56

도봉산 광륜사('13.11.23)

 

도봉산 光輪寺

영만스님 뵈러

한번 가본다 해놓고

이제서야

번개모임을 가졌다.

낙엽들 내려앉은 길가에

출렁이는 인파들 속으로

꾸역꾸역 안으로 가서는

마음은 마~ 냥

어린아이처럼 해맑아서...

종일로 기쁨이었다.

 

 

 

 

 

 

 

 

 

할아버지 한분이 훌라후프로

산행 길 올라가는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고

 

바로 인증 샷도 해준다.

 

 

 

 

올해가 무주당 淸華 큰스님 열반10주기 되는 해였다.

 

티벳에서 오신 푼촉스님이

淸華큰스님이 기거하셨던

조사당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차담으로 이어진

푼촉스님의 선 지식과

티벳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건너온 이야기 들...인도에서의 수행...한국에서의...생활 들

이어지는 질문에 해박한 선지식으로

간간이 우리말의 어려움으로

영만스님이 대신 이어준다.

푼촉스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어지는 

영만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절제되는 그 말들 속에

어느덧

새로운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참 대단한 선 지식이다>

 

영만스님이 淸華큰스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말은 안해도 서로 통한다.

보견심님, 솔님, 정안님, 들꽃님, 물같이님

나와 함께 오롯하게 마음으로 느끼는 향기로운 교감들을 ~~ ^~^

 

 

 

 

 

 

 

 

 

 

 

 

 

 

 

 

 

 

 

 

 

일산으로 오늘 길에

광탄 지인의 갤러리에서

황토 찜질방 체험과 작업실...

아름다운 소품들을 관람하고

음악실로 올라 노래로 마음을 나눈 뒤에야

전통다실에서 또다시 차담이 이어진다.

 

안주인의 아름다운 마음과 정성스런 차 접대로 흠뻑

모두가 빠졌다 가, 어둑해서야 길을 나선다.

 

 

 

 

 

 

 

 

 

 

어쩐다?

세상 일 너무 많은데

어디 나 쓰일데가 없을까?

이것도

저것도

여태껏 하나도

無明으로 밖에 살아왔거늘...

 

어쩔까?

가는 날들 서러워

그리도 바람불어

거리 황량한데

 

이제는 ...

또 길을 찾아 나서야 하나보다....

 

 

<無明>

무아(無我)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자아가 있다고 집착하는 무지의 상태.

산스크리트 어의 아비댜(avidya)를 번역한 말로,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된다.

 

 

2013. 11. 25 

소반 쓰다.

 

 

 

 

♣ 청화큰스님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스님은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세납 81세, 법납 56세,

스님은 24세에 출가한 이래 40여년 간 눕지 않고 좌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과 오랜 동안의 묵언(默言) 수행을 한  이시대 당대 최고의 선승 선지식으로 꼽힌다.

스님은 특히 “음식이란 사람의 신체와 정신을 유지시켜 주는 최소한의수단일 뿐 배를 불리기 위한 게 아니다”며 하루 한끼만 식사를 하는 원칙을 지켜왔다.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스님을은사로 승려 생활을 시작한 그는 대흥사, 사성암, 벽송사, 백장암, 상원암, 칠장사 등 선원과 토굴에서 수행 정진했으며 60세가 넘어서야 대중 설법을 시작했다.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염불선 수행을 해온 스님은 참선을 할 때는 심지어 석달열흘 동안 물만 먹고 정진하기도 했다.

스님은 늘 법문을 통해 “참선을 잘 하면 내가 없고 네가 없고 미운 사람 좋은 사람도 없어지며 나날이 좋은 날이고 때때로

좋은 때이다”라며 참선을 ‘가장 행복한 공부’라고 했다.

그는 또 불교의 어느 종파의 가르침도 버리지 않고, 다양한 교법을 서로 걸림 없이 회통하는 원통불교(圓通佛敎)를 주장했다.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린 곡성 동리산 태안사를 1985년부터 10여년에 걸쳐중창 복원, 구산 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재건했다.

1992년 말 미국에금강선원을, 도봉산에 광륜사를 열었으며 ‘정통선의 향훈’‘원통불법의 요체’등의 저서를 남겼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입적 사실을 알리지 말고 최소한 간소하게 다비식을 치를 것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님은 입적하는 그날도 평소처럼 일종식을 하시고 저녁에 상좌들과 모여 법담을 하시면서 나 이제 금생에 세연 다했으니 이제 갈란다, 하시며 2003년 11월16일 10시30분에 열반에 드셨다.

 

스님은 입적에 앞서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기셨다.

此世他世間 - 이 세상 저 세상
去來不相關 - 오고감은 상관치 않으나
蒙恩大千界 - 은혜는 대천세계만큼 큰데
報恩恨細澗 - 갚는 것는 작은 시내 같음을 한 스러워 할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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