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창작

2019년 김포글샘 발표시 3편(아름다운 혼밥, 눈밝은 메리골드, 가을링링)

ksanss@hanmail.net 2021. 8. 4. 23:54

아름다운 혼밥

 

 

홀로

삶을 나누고 위로를 양육한다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진 시간들과

고즈넉하게 시끄러운 밤이

낯가림의 경계를 허문다.

 

멈칫멈칫 밀려오는

외로운 숟갈로 버무린 밥을

입안의 깔깔한 양념을 위로하면서 새김질한다.

 

혼자여서 방해하지 않고

홀로여서 방해받지 않는 혼자이다

망설임 없이

무리를 탈출한 이방인들은

더 이상 불편해 하지 않는다.

 

나를 향해 오는 시선들은

사실은 내가 그 시선을 의식한 것 뿐

고독하지 않은

불가침의 시간을 보내는 데는 전혀 무관하다.

 

지금

우리는 혼밥을 위해

배달민족의 자긍심이 있다

 

돈까스, 라면, 롤 샐러드, 게살볶음밥, 도시락1, 2, 김치, 하물며 물 ....

 

 

 

 

눈 밝은 메리골드

 

 

골목길 작은 뜰에

서로를 기대고

삐딱하게 쭈빗쭈빗 살고 있다

 

푹푹 찌는 목마른 낮에는

머리 숙여 외면하고

밤이슬의 단단한 음기의 생명수를 길어

새 생명의 잉태를 노리고 있다

 

봉오리에 물 오르고

방금 핀 하양, 노랑, 연분홍, 빨간색으로

때론 이미 전생에 맺은 전처의 보라색 혼혈아로

꽃단장을 마치면

드디어

순진한 숫벌들이 구애를 시작한다

 

벌건 대낮에

사랑에 흠뻑 빠진 작은 뜰에서

쉴 새 없는 비음의 교성이 윙윙 거리고

봉긋이 솟은 처녀들이

하나씩 하나씩

순산의 고통을 즐기며

촉촉히 만개하고 있다

 

후생의 인연씨를 뿌려놓고

만개한 자신의 한 몸 덖어

뜨거운 노오란 오줌을 거르고 있다

 

눈 밝은

골목길 노오란 사랑을 홀짝인다.

 

가을 링링

 

 

어느 날 바람과 비는 발톱을 숨기고 생을 부풀려 참기 힘든 분노와 저주를 쏟아 부었다. 언제부터인지 선한 이 땅위에 썩은 시궁창 악취와 뿜어대는 쓰레기로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극이 무너져 자꾸만 태양빛 비치는 곳이 오염되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날에 때때로 빙하의 파편을 모아 바람을 만들고 비를 모아 선물한다 이번에는 가장 연약한 소녀 링링이 잠깐동안 방울방울 한을 선물하고 갔다 죄도 없이 죄를 지어서 소리 없이 떠나갔다 금새 잊혀진 너의 예쁜 이름에 들녘에 쓰러진 서러운 벼들은 논바닥 진흙탕에서 긴 목을 떨며 피묻은 그리움으로 탈곡을 기다리고 있다 막 영글어 가는 힘없는 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제 둥지밑에 떨어져 썩은 날파리떼와 죽음의 위로잔치를 하고 언제나처럼 선택받은 뗏깔좋은 감들은 넉넉한 힘으로 살아 남아 찬란한 햇살을 빚어 영롱하기만 하다 이 가을 가난하고 재수 없는 불쌍한 자들만 제 몸의 노여움을 스스로 덮고 피멍에 울화병 도져 가을 링링하며 다소곳이 썩은 긴 숨을 몰아서 쉬고 있다

 

 

* 링링 : 2019년 제13호 태풍이름. 홍콩에서 제출한 태풍이름으로 소녀의 애칭이다. 9. 7일 한반도를 통과하면서 강한 바람과 비를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