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온돌난방 방식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해외시장 진출의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이를 배우려는 각국관계자들의 움직임도 많아져 얼마전 중국의 난방관계자들이 방한해 우리의 ‘구들’에 대해 연구하고 양국 단체간 협정을 맺기도 했다. 우리 한민족은 예로부터 불을 잘 다루어 하늘로 올라가는 불을 방고래 속에 들어가게 해 불을 밟고 서고, 불을 깔고 앉고, 불을 베고 잘 수 있는 온돌(구들)을 만들어 냈다. 아궁이에서 굴뚝까지 불을 잡아 둔 온돌구조로 열이 오랫동안 구들에 머물게 해 구들을 달궈 불을 넣지 않는 시간에도 구들을 따뜻하게 해 방 전체를 덥히는 과학적인 난방방식 이었다. 반면 서구의 다른 나라는 전통적으로 어떻게 난방을 했을까. 고조선 시대부터 써 온 우리의 온돌문화와 대비해 다른 나라는 어떤 난방을 사용하고 이를 어떻게 발전시켰나 살펴봄으로 우리의 난방방식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었는지 조명해 본다.
한국의 온돌을 말하면서 ‘구들’을 얘기하지 않고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들은 바닥 밑에 돌과 진흙으로 구들장을 괴어 고래를 만들고 구들장 위에 진흙으로 방바닥을 만들어 열원을 공급하는 아궁이와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을 만든 후 아궁이에 열을 공급해 구들장과 방바닥에 축열시킨 다음 연기를 굴뚝으로 배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난방은 구들장과 진흙 방바닥에 축열된 열을 방열해 사용하게 된다. 우리의 집은 구들을 보호하고 구들은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절묘한 구조로 되어 있다. 한옥의 구조 자체가 구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마철의 습기는 진흙이 흡수했다가 건조하면 방출해 방의 습도를 조절해 준다.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는 구들고래가 막아주고 겨울에는 지열을 고래가 저장해 주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구들은 아침·저녁밥을 짓는 불을 이용해 열기를 고래로 내류시킴으로 구들장을 가열·축열해 불을 지피지 않는 시간에도 축열된 열을 방바닥에서 방열시켜 난방하는 방법으로 고체축열식(古體畜熱式)이다. 직접 불을 때는 직화(直火)고래구들의 구조는 아궁이, 아궁이후렁이, 부넹기, 구들개자리, 고래, 고래개자리, 굴뚝, 구새 등의 순으로 구성되고, 이들 단계를 열이 통과하면서 구들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도록 설비한다. 즉 열에너지를 집 안에서 머물게 해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돼 있다. ‘사람들은 산골짜기에 살며, 지붕은 따로 덮였다. 겨울에는 긴 구들을 만들고 그 아래에 불을 지펴서 방을 덥힌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구들은 1400년 이상 된 우리 민족의 가장 우수한 발명품 중에 하나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 오스트리아의 ‘라우흐 하우스(Rauchhaus)’
독일어권, 특히 오스트리아는 이러한 집을 ‘라우흐 하우스’라 불렀다. 직역하면 ‘연기집’이다. 11세기경 독일어권 속담에 ‘집안의 3대 惡은 비가 새는 지붕, 바가지 긁는 아내, 그리고 연기’라 할 만큼 라우흐 하우스 방식의 난방은 원시적이었다. 연기에 시달리던 일부지역에서 불자리 위의 지붕을 깔대기형으로 만들어 연기가 나갈 수 있게 한 형태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크기가 지붕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 깔때기 형태의 연기배출 시설을 ‘라우흐슐롯’이라 했다. ‘라우흐슐롯’ 형태는 알프스 산간지역에서 특히 17~18세기에 유행했다. 이러한 형태의 난방시스템은 연기가 잘 빠져나가 연기고민을 덜어주는 대신 큰 결점을 보였다. 난방효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로 집안의 열기도 같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 독일의 ‘슈빕보겐헤르트’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벽에 불이 접촉되어 벽이 갈라지고 무너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이를 막기위해 나중에는 불 뒤편 벽에 쇠로 판을 만들어 부착했다. 벽도 보호하고 방으로 열기가 더 많이 반사되어 난방효과가 더 강해졌다. 이러한 형태는 18~19세기 독일 농촌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 서유럽에서 쓰던 ‘벽난로’
벽난로에서 불과 연기는 한 몸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연기는 내 보내고 열기는 잡아둘까 궁리했다. 프랑스의 ‘루이싸보’라는 건축가가 1640년경에 아이디어를 냈다. 철판으로 벽난로의 바닥을 10cm정도 올리고 바닥과 불 뒤편 벽을 띄어 공간을 낸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빈 공간의 공기가 데워지고 아울러 벽난로 바닥을 통한 열 손실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것 처럼 보이나 당시에 이것은 혁신이었다. 피뢰침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미합중국 개국공신 벤자민 프랭클린은 1740년 경, 벽난로가 따뜻하지 않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판단해 직접 벽난로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철판 두 개를 15cm 가량 엇갈리게 설치해 불꽃과 연기가 이 틈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렇게 함으로서 굴뚝으로 들어오는 외풍을 줄이고 연기도 감소시키는 효과를 줬다. 프랭클린은 이 시스템을 발달시켜, 철판을 수직으로 걸어 움직일 수 있게 바꿨다. 이렇게 하니 외풍의 양을 조절 할 수 있어 방열판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프랭클린은 다시 세 번째 아이디어를 냈다. 벽난로 앞 양쪽 안벽에 수직으로 홈을 만들어 철판을 넣은 후 이 철판을 밀어 올리거나 내리는 정도로 불타는 속도와 화력을 조절했다. 또 벽난로 앞 부분에 연소를 돕는 공기유입구를 만들고 바닥 밑에는 벽돌 몇 장을 들어내 신선한 공기가 벽난로 내무의 빈 공간으로 유입돼 데워지도록 통로를 마련했다. 바로 이 벽난로가 ‘프랭클린 벽난로’다.(그림 3) ■ 독일의 ‘철제 난로’
이 난로는 기존의 벽난로와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불을 벽 사이에 두고 부엌 또는 복도와 분리해 난방을 했기 때문에 실내에 연기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초기 철제 주물 난로는 기술이 부족해 4각형의 판을 만들어 박스 형태로 붙이듯 조립해서 썼다. 벽 뒷면에 구멍이 두 개 위아래로 있었는데 아래구멍으로 불을 지피면 윗구멍으로 연기가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윗구멍은 대개 부엌 또는 홀과 통했는데 이곳을 통해 출입구나 처마의 틈새로 연기가 빠져나갔다. 철제난로는 대개 벽에 붙였으므로 5개의 쇠판이 쓰여서 ‘5쪽판 난로’였으나 나중에는 난로를 벽에서 일정 간격 띄우는 경우도 생겼다. 이땐 ‘6쪽판 난로’가 되는데 이것은 난로의 뒷면에 공기가 스쳐 발열 면적이 넓어지므로 열을 조금이라도 더 얻는 구조였다. 난로가 벽에서 떨어짐으로 연통이 필요했다. 난로에 연통이 부착되면서 사람들은 한 가지 현상에 주목했다. 연통을 가능한 많이 만들어 구불구불하게 꺾어 길게 엮으면 열을 좀 더 많이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 미국의 ‘온수 라디에이터’
그러다 1652년 영국의 정원건축가 ‘휴 플랜’이 처음 ‘저압증기난방’을 고안했다. 정원건축가이니 만큼 온실의 난방을 위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러다 1745년 ‘윌리엄 쿡’이 저압증기난방을 주거용 증기난방으로 아이디어를 냈지만 당시엔 큰 주목을 못 받았다. 1784년 우리가 잘 아는 증기기관의 창시자 제임스와트가 증기난방을 자기의 작업실에 설치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증기난방은 압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할 경우 폭발해 버리는 치명적 단점이 있어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온수를 이용한 난방은 그 이후에서 영국, 스위스 등에서 계속 실험적으로 이뤄졌으나 일반적 난방방식으로는 알려지지 못했다. 오늘날 라디에이터의 모습은 1830년에 나타났는데 안타깝게도 발명자가 누군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온수 라디에이터를 기존의 집에 설치하기에 너무 번거로웠다. 온수 라디에이터가 넓게 퍼지게 된 계기는 2차 대전이었다. 전쟁으로 거의 대부분의 가옥이 파괴되고 전후 새로 집을 지어야 했는데 이때 라디에이터 난방방식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때 전 시대에 썼던 철제난로 방식을 활용했다. 즉 철제난로의 구불구불한 연통이 난방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고 주름을 넣은 라디에이터가 나온 것이다.
연기는 ‘window’의 어머니
“온돌의 현대화, 표준화 작업 절실”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의 저자 충북대 리신호 교수를 찾아가 우리 구들의 우수성과 현대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의 구들난방방식은 축열성이라는 것이 다른 방식의 난방과 비교했을 때 가장 개성적입니다. 고래를 통해 방구들을 한번 덥히면 더 이상 열에너지를 전달하지 않아도 하루 종일 방안이 따뜻합니다. 바로 이점이 다른 나라의 난방방식과 확연한 차이입니다. 그리고 구들방식은 인간의 몸 시스템을 모방한 것입니다.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올라갈수록 따뜻해지는데 사람의 머리로 시작해 다리로 가면 따뜻해야 하는 頭寒足熱(두한족열)의 원리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서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벽난로나 라디에이터 방식을 보십시오. 바닥은 차고 위는 뜨거운 방식 아니던가요. 두통을 유발하기 딱 좋습니다. 이는 사람 몸의 특성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건강까지 해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아랫목은 어머니의 바느질, 다림질, 아기보육의 자리이고 가족이 아플 때 찜질하는 자리며 밥그릇을 높고 이불로 감싸 식지 않게 했던 다용도의 자리였다. 집의 구조상 가장 소중히 여겼던 아랫목과 구들이지만 지금은 이러한 기능이 거의 사라질 위기다. 어쩌다 우리의 구들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인지 궁금했다. “우리의 구들이 천대를 받은 건 연탄가스중독으로 인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상자를 냈던 70년대 80년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실 구들이 문제가 아니라 구들을 덮히는 연료의 문제였죠. 그 구들이 미국으로 전이되어 지금 가장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구들에 의한 온수난방이 성공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구들의 가장 큰 특징인 축열식이 아닙니다. 그저 온수가 바닥에 돌때만 난방이 되는 방식이니 우리의 구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문 학자의 눈에 현재 우리의 온돌은 어떤 처지에 있으며 우리의 온돌을 어떻게 해야 세계적인 난방방식으로 보급할 수 있을지 물었다. “가스보일러나 전기보일러를 쓰는 온돌방식도 문제가 많습니다. 고유가다 뭐다해서 보일러 연료를 아껴야 한다고 다들 떠들지 않습니까. 현대적 보일러에 ‘고러를 적용한다면 열효율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지금의 온돌은 고래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의 온돌에 고래를 넣을 수 있고 고래를 덥혀 온돌의 온도를 높인다면 보일러를 꺼도 축열식의 원리에 의해 하루 종일 난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실현하려면 당장 이를 위한 구들의 표준화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보일러를 꺼도 하루 종일 난방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이보다 더 좋은 난방방식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를 위해 보일러제조사 같은 가스기기 제조사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 모 업체에서 개량화 된 온돌방식에 고래를 넣어 ‘겹구들’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이는 아궁이가 없는 함실구조이기 때문에 부넘기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스로 구들에 축열해 열 보충 없이 3일정도 난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단점이 있다면 공사하는 방식이 복잡해 비용이 많이 들고 축열을 자동으로 측정해 자동으로 가스가 공급되게 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들을 가스기기 제조사에서 연구해 해결해 준다면 구들과 가스보일러의 결합으로 새로운 난방문화를 열여가는 거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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